CHUNG WOON HAK 정운학 홈페이지 입니다.

title <심상용> 존재와 사물을 지지하는 내면으로부터의 빛

존재와 사물을 지지하는 내면으로부터의 빛

                                              

빛, 그 불확정성으로의 도약



정운학의 근래 작품들은 평면아크릴 판을 성형해 일련의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 의미론적 기초를 두어 왔다. 그 과정을 통해 평면과 입체의 경계, 2차원과 3차원의 구분을 폐하거나 최소한 동일한 하나의 출처를 가진 것으로서 완화, 또는 재정의해 온 것이다. 2008년의<쉼>같은 작업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새삼 질문되어야 할 주제로 설정되었다. 2차원 평면인 플라스틱 수지가 3차원의 옷으로 성형될 때, 불가피하게 야기되는 안과 밖, 내부와 외부의 구분은 존재와 사물, 존재와 무(無)의 경계까지를 문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하나의 무기물이 어떤 도약에 의해 돌연 피부의 연장이 되고 존재의 상징이 되는, 일테면 물질을 비물질적 접촉점을 가진 것으로 되는 비선형의 과정에 심취했던 것이다. 평면의 수지를 성형해 자루-신체적 특성을 공유하는-를 만들었던 2009년 작품<자루>도 전적으로 같은 맥락이었다. 여기서도 핵심은 사물과 신체, 내면과 외부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며, 그 완화된 구분들에 내포된 인지적, 상징적 혼돈을 오히려 즐기는 것이었다.

정운학의 세계에서 빛이 중요한 요소로 수용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로는 빛과 사물, 또는 빛과 색이 경계 부위에서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상호작용과 변주들로 관심사가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비물질과 물질, 빛과 사물의 보다 근원적인 경계을 시급한 주제로 대두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부터 그의 작품들은 빛과 사물, 빛과 색을 구분하는 동시에 교차시키는 하나의 새로운 구획을 설정한다는 의미를 띠게 되었다. 게다가 비물질과 물질의 경계와 구분은 영혼과 신체라는 폭발력이 강한 주제와 언제나 마찰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는 문제다. 물질계는 이성의 차원에서 이해 가능하지만 비물질의 세계, 영혼의 차원은 그렇지 못하다.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05)의 표현을 빌자면, 이성의 차원에서 영적이고 신비로운 과정으로 넘어가는 과정으로서, 그 안에 집착을 넘어서는 힘과 실존의 덫에서 자유로워지는 지식을 포함시키는 어떤 '불확실성 속에서의 도약'이 요구된다. 빛이 존재에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사실 외에, 그리고 빛과 사물이 영혼과 신체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가장 유력한 비유라는 사실 외에, 빛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빛이 우리에게 이성을 뛰어넘는 어떤 지적 도약에 의해 아무 것도 통제할 수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암시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빛은 존재 자체로 인해 다른 세계, 다른 현실로 안내하는 직관적 상징체계의 일환이다. 빛은 즉각 광원(光源), 곧 '어디로부터 오는가'와 그것의 부재인 어둠(암흑)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더구나 빛은 단순한 '밝음' 이상이다. 빛-인공의 빛조차도-은 '밝음'인 동시에 에너지로서, 식물을 키우고 그 식물을 먹는 동물을 키운다. 곧 자연계, 생태계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태양)빛 자체이기도 한 에너지에 의해 생존하고 유지, 작동하는 것이다. 지구 생태계에 소속된 모든 것들은 이 비물질, 그토록 명료한 실체적 에너지인 빛이 아니고선 스스로를 유지하거나 확장시킬 수 없다. 빛은 생명과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의 모방하는-어설프고 가련한 모방이기는 하지만- 문명의 중심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빛이 밝음이요 인도며 생명이라는 것은 단지 상징적인 기술(記述)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은 감춰진 비밀이 아니라 공공연한 진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어둠, 곧 빛의 부재가 밝음의 부재, 혼돈, 생명의 멸절이라는 것도 상징적 기술 이상이긴 매한가지다. 빛과 빛의 부재인 어둠은 모두 실체며 진실이다. 낯과 밤을 통해 알고 느끼듯, 세상은 이 두 질서, 두 차원으로 되어 있으며, 그것-빛과 빛의 부재-과 무관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중립적인 영역은 단 한 평도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어두움은 각각 자신을 재현하고 모방하는 영역적 기제들을 가지고 있다. 전자, 곧 빛의 영역기제는 밝음, 진실의 드러남, 생명, 성장, 긍정성, 꽃의 만발, 풍성한 수확 등과 그것들을 지지하는 내적 가치로서 사랑, 자유, 평화, 정의, 아름다움 등이다. 반면 어두움의 그것은 혼돈, 드러나지 않음 곧 거짓, 사망, 시들고 마른 꽃, 흉년, 전쟁, 재앙과 그것들의 내적 가치인 증오, 억압, 적의(敵意), 부정성, 정의의 부재 등이다.

책이 빛의 세계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게 정운학의 <책이야기>의 제안이요 메시지다. 그 안에 담긴 종교, 도덕, 예술, 철학, 활자화된 지혜와 지식들과 더불어, 오늘날 갈수록 환대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그것의 내부에 다시금 불을 밝히자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 것이다. 사실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인 책은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대표적인 약자(弱者)로서, 그 존명의 여부가 공공연하게 운운되는 것들 중 하나가 되었다. 작가는 그-책-의 내부에 다양한 색을 띠는 빛을 둠으로써 책 속에 빛이 있도록 한다. 책의 내부로부터 빛, 곧 밝음과 인도와 생명의 빛이 발산되어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빛의 내재성

텍스트의 중심에 빛의 내재성이 위치되는 맥락은 그의 또 다른 작품<춤>(2011)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책이 아니라 인간이 텍스트가 된다는 점만을 제외한다면, 상황은 <책이야기>와 전적으로 같다. 작업과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물군상의 매우 축약된 형태들은 플라스틱 수지를 성형하여 만들어졌다. 그 표면에는 다양한 색의 한지가 콜라주되어 있는데, 이는 흥에 겨워 춤추는 듯한 토로소들에게 서정적 뉘앙스의 색면추상적 피부를 제공한다. 이 피부는 내부의 빛이 투과될 때, 한 결 더 생동감을 지닌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것이 된다. 여기서도 우선적인 의미는 물질로서 조각 내부를 채우는 비물질 구조며 에너지로서의 빛이다. 이 존재와 무(無)의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내적 구조가 조각 전체를 포섭해, 물질로서의 조각에 집중할수록 비물질적인 조각의 내부로 의미의 중심이 이동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비물질적 내적 구조에 의해 물질인 조각이 해체되거나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빛이 투과하면서 물성은 오히려 더 명료성을 띤다. 빛은 대상을 부인하지도, 그 존재성을 박탈하지도 않는다. 빛은 물질과 사물의 안티테제가 아니라, 그것이 진정한 테제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듯 정운학의 춤추는 인물들은 각각의 내부로부터 발하는 빛에 의해 더욱 존재로서의 온전성을 확보한다. 그들의 흥은 보다 존재론적인 차원의 것이 되고, 그들의 군상(群像)은 더욱 밝음에 속하고 생명의 윤리에 근접한 것이 된다.

이러한 맥락은 그의 <신문>작업으로도 이어진다. 정운학에게 신문을 복잡다단하게 돌아가는 세태를 함축하는 시각적 약호에 다름 아니다. 매일 아침저녁 배달되는 신문은 전쟁, 살인, 강도, 강간, 청소년 매음(賣淫), 집단폭력과 같은 온갖 끔찍한 범죄와 모든 종류의 부도덕과 몰인간화의 세태들, 비리와 파렴치, 협잡, 사기 등으로 차고 넘친다. 매일의 신문이 입증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그러한 짓들을 저지르는 종(種)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바로 그러한 종의 일원이자, 그러한 문명의 주체인 동시에 희생자로 불안한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철학이 질문해 왔던 좋은 삶, 성공적인 인생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과 같은 진화된(?) 문명에서 전례없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무엇보다 이 시대 위에 암운처럼 드리어져 있는 '어둠의 철학'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인간은 그것에 충실할 것이 요구되는 본질이 부재하는 존재이기에 오히려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 그 사상의 모토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자각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 외의 답을 제공하는 상위의 차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예컨대 사르트르적 실존주의가 그것들 중 하나인데, 그렇다면 신문들의 지면이 갈수록 끔찍한 사건들로 채워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 가능한가? 그 속에서 인간은 다만 끊임없이 부조리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정운학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작가가 어떤 대항적인 형이상학적이거나 신학적인 토대를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더라도 그가 수집한 세상의 절망적인 증거들에 어떤 밝고 희망적인 뉘앙스가 개입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심지어 가증하고 끔직스러운 사건들조차 기꺼이 마주해야 할 진실의 차원으로 재규명된다. 내부로부터 발하는 빛에 조사되는 순간 절망의 무게는 훨씬 가볍고 견딜만한 것으로, 희망을 말해야 하는 단초로 그 성격이 뒤바뀐다.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겠지만 외부로부터 밝음에 의해 충분히 유지될 것이다. 정운학이 조치해놓은 빛에서 알랭 바디유(Alain Badiou,1937~ )1) 의 '은총'의 개념을 환기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디유에 의하면" 은총이란 "주체 안에서 삶의 길이 갑작스레 다시 작동하는 이유를, 즉 사유와 행동 사이의 연결 관계가 재발견된 이유를 사유가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내조명&외조명

중요한 것은 광원의 내재성이다. 이로 인해 문제의 핵심이 내부로 돌려지며, 서사의 방향이 안으로부터 밖으로, 중심에서 표면으로 진행된다. 내부로부터 오는 빛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통상적 '조명'과는 전적으로 상반된 의미다. 외조명(外照明)은 물성(物性)이나 그 표면을 강조하거나 돋보이게 할 뿐이다. 외조명의 효과는 물질을 더욱 물질로서, 이미지를 더욱 이미지로서 부각시킬 뿐, 내재화될 수도, 물질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모던적 전통의 조각과 회화가 원해 왔던 것으로, 다만 시각효과를 높이고 시선을 유인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제한되는 빛이다.

반면, 정운학이 시도하는 내조명(內照明)에 의해 시선은 표면이 아니라 내면으로, 존재의 이미지가 아니라 핵심으로 향한다. 그 내재성으로 인해 작가의 조각예술은 더욱 내재적인 것, 즉 그것에 의해서만 설명가능한 것이 된다. 빛은 내부로부터 발해 대상을 밝히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물성의 일환으로 스스로 포섭되기도 한다. 이로서 작가의 조각은 빛에 형상을 제공하고, 형상이 빛의 연장이 되게 하는, 비물질과 물질, 빛과 사물 사이를 잇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게 된다. 그 둘이 더 이상 유리된 두 세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차원임을 밝히는 지평이 되는 것이다.



The Inner Light Supporting Existence and Objects



Shim, Sang-yong Ph.D. in Art History, Dongduk Women's University



Light, Jumping to Uncertainty

Recent works by Chung, Woon-hak have laid the semantic foundation on the process of making a series of forms using a molded plane acrylic plate. Through the process, he does away with the border between plane and solid and distinction between 2D and 3D or at least mitigates or redefines it as the same source. Pause in 2008 established the border between the interior and exterior as the subject to be questioned specially. When a 2D plastic resin was molded into 3D clothes, the distinction between the inside and outside and the interior and exterior caused inevitably served as a momentum of drawing the border between existence and object and existence and nonexistence into the area of problem. The artist may be fascinated with the process of non-linearity where one mineral suddenly becomes the extension of skin and the symbol of existence by certain jumping, say, materials become non-material interface. Sacks in 2009 which made a sack-sharing physical characteristics-by molding plane resin was the totally same context. In this point, the key was to cross the border between object and body and the inner and outer and enjoy cognitive and symbolic chaos implied in the loose distinction.

Since 2010 when light was accepted as an important element in Chung, Woon-hak's world, his concerns have been extended to interaction and variation made by the meeting of light and object or light and color on the border. It served soon as a momentum that more underlying border of non-material and material, and light and object became more urgent. As a result, his works have had a meaning of establishing a new segment which divides and crosses light and object and light and color simultaneously. Moreover, the border and distinction between non-material and material are ready to cause conflict with spirit and body, a explosively strong subject. While the material world can be understood in the level of reason, the non-material world, namely, the spirit level cannot. As expressed by Paul Tillich(1886-1905), 'jumping to uncertainty' is required to include knowledge which is free of power beyond adhesion and the trap of existence as the process of passing from the level of reason to spiritual and mysterious course. Besides the fact that light is inevitable to existence and that light and object is the most prime metaphor of the essence of existence, we do not know about light itself a lot. Surely, light acts a hint that it is possible to enter the world which is out of control by intelligent jumping beyond a reason.

Light is a part of intuitive symbolism that leads us to different world or different reality only by its existence. Light is an immediate source of light, that is, evokes 'where it comes from' and a problem of darkness, its element. Moreover, light is more than simple 'lightness'. Light-even artificial light-is 'lightness' and energy and grows plants and animals eating the plants. In other words, all living things in nature and ecology are survived, maintained, and operated by energy which is light itself. All things belonging to global ecology cannot maintain or extend themselves without light, non-material and clearly substantial energy. Light is the pivot of life, nature, and civilization which imitates the nature-although poor. Therefore, that light is lightness, guidance, and life is not just description. Furthermore, it is not a hidden truth, but an open truth.

In the same context, it is more than symbolic description that darkness, that is, an element of light, is an element of lightness, that is, chaos and extinction of life. Light and darkness, an element of light, is all substance and truth. As we know and feel through day and night, the world consists of the two orders and two dimensions and there is no unrelated or neutral areas with them-light and its element. Light and darkness has area mechanism that reproduces and imitates itself respectively. The former, the mechanism of light includes lightness, exposure of truth, life, growth, optimism, full bloom and rich harvest and the internal value supporting them is love, freedom, peace, justice, and beauty. On the other hand, the mechanism of darkness includes chaos, non-exposure, false, death, wilted and dried flower, a bad year, war, and disaster and their internal value is hatred, suppression, hostility, negativity, and the absence of justice.

That a book should be included in the world of light is the suggestion and message of Story of Books by Chung, Woon-hak. The artist suggests that we should light again its inner which is excluded in the object of welcome today, along with religion, morality, art, philosophy, and printed wisdom and knowledge. In fact, a book, a representative analogue medium, is the typical weak of the age of digital media and one of things whose the presence of existence are openly mentioned. By putting colorful light in the inside, the artist makes light exist in the book. Then, light from the inside of the book, namely, the light of life of lightness and guidance, is emitted.

Immanence of Light

The context in the center of text where the immanence of light is located is identified in his other work, Dancing (2001). The situation is the exactly same as Story of Books, except that human beings not a book are the text. The process of working is also not different. The reduced shapes of figures were made by molding resin. On the surface, colorful Korean papers form collage, providing torso with color abstractive skin of lyric nuance as they dance joyfully. The skin becomes much vivider and softer pastel tones when the inner light penetrates. In this point, priority meaning is light, non-material structure and energy which fills the inside of sculpture with materials. The internal structure which comes and goes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busily fixes the whole sculpture and the center of meaning is switched into the inside of non-material sculpture as one concentrates on the sculpture as material. Yet, the sculpture of material is not broken up or denied by the internal structure of non-material. As light penetrates, material property becomes clearer. Light does not deny objects or deprive light of its existence. Light is not anti-these against material and object, but helps it become true-these. Chung, Woon-hark's dancing figures secure the integrity of existence by light emitted from the inside. Their joyfulness becomes a more existential level and their group belongs to brightness and is closer to the ethics of life.

This context is connected with his Newspaper. To him, newspaper is only a visual code which implies complex social conditions. Newspaper delivered every morning or evening is full of horrific crimes and all kinds of immoral and heartless acts such as war, murder, robbery, rape, youth prostitution, group violence, irrationality, shamelessness, cheating, and fraud. It is truly demonstrated by daily newspaper that human beings are the species who commit such acts. All of us are members of the species and the subject and victim of such civilization who live a precarious life. Paradoxically, good life and successful life that is questioned by most philosophy is unprecedentedly and seriously threatened by advanced civilization(?) as today.

Above all, 'philosophy of darkness' thrown in this times as dark clouds is the most serious matter. Its motto is that human beings are rather great existence as they lack in the essence required to be faithful. For example, Sartre's existentialism is one of them. It argues that there is no a superior dimension which provides an answer other than living in the way to respond to self awareness with the utmost efforts. Then, how can filling more and more horrific events in newspaper be explained? Do human beings just have to fall into the bottomless pit of irrationality and be despaired?

Chung, Woon-hak does not seem to think so. Of course, he does not argue some resistant metaphysics or theological foundation. Yet, it should be admitted that some bright and hopeful nuance is being intervened in desperate evidences of world he has collected. In this point, even disgusting and horrible incidences are redefined as the level of truth we are willing to confront. As soon as we are applied to the inner light, the weight of desperation becomes lighter and tolerable and changes into a clue to say a hope. Although the world does not change greatly, it will be sustained by brightness from the outside. That is why it is not too much to say that the light applied by Chung, Woon-hak arouses Alain Badiou1)(1937-)'s blessing. According to Badiou, "blessing means that the reason why the way of life suddenly operates again within the subject, namely, the reason why connection between thought and action is discovered again cannot be fully explained by thought".

Interior Lighting & Exterior Lighting

The important is the immanence of the source of light. It turns the key of problems into the inside and the direction of narration proceeds from the inside to the outside and from the center to the surface. The inner light is directly opposed to common 'lighting' given by the outside. The exterior lighting emphasizes only material property and its surface. The effects of exterior lighting increasingly emboss material as material and image as image, but cannot be internalized and influence material itself. It has been pursued and desired by modern traditional sculpture and painting. It is the light which limits the meaning to increase in visual effects and attract one's eyes.

On the other hand, one's eyes are directed to the inner, not to the surface and to the core, not to the image of existence by the interior lighting attempted by Chung, Woon-hak. The artist's art of sculpture becomes more immanent, namely, can be explained by itself due to the immanence. Light does light the object from the inside, as well as is fixed naturally as a part of property. The artist's sculpture serves as a link which connects between non-material and material and between light and objects to provide the shape of light and make the shape into the extension of light. Both are not separate two worlds, but become the horizon which reveals one interactive dimen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