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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홍윤리> 반사된 풍경 광주시립미술관 정운학 초대전

전시서문                                                   

                                                                                                                                홍윤리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사)



광주시립미술관은 해마다 창작정신과 실험성 있는 작품으로 활동이 기대되는 작가를 선정하여 초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초대전에는 정운학 작가가 선정되었다. 여러 작품(입체 덩어리)들을 벽면에 뚝뚝 부착하는 방식으로 설치작업을 하는 정운학은 2001년에 7년간의 독일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광주근교(함평 월야)에 작업실을 짓고 작품 제작에 전념하고 있다.

정운학의 작품은 평면의 공간성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대학 시절 회화를 전공했던 그는 독일 유학시절부터 '입체적 회화' 라고 명명한 입체 덩어리에 그림을 그린 작품을 제작했다. <계단이 있는 공간> 또는 <복도> 등으로 이름 지어진 작품들은 평면의 캔버스가 아닌 석고 덩어리를 제작한 후 계단 또는 문이 열린 공간, 벽돌 벽의 구석 등을 그렸다. 노트만한 크기의 입체 덩어리에 그려 넣은 이 공간은 들어가 보인 듯한 공간이 실제 튀어나와 있고 튀어나와 있을 것 같은 공간이 들어가 있다. 창문 밖의 풍경도 창문과 틀을 그리는 것이 아닌 하늘의 공간을 오려낸 듯이 표현했다. 그는 익숙해진 공간을 전도시켜 표현한다. 정운학의 이러한 작품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허구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런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세계에 대한 비판적 반동적 시각은 <구겨진 풍경>, <숨>, <자루>, <책 이야기> 등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그가 만들어 낸 천, 옷, 자루, 책은 평평한 형상이 아니다. <구겨진 풍경>은 푸른색의 바다와 노란 개나리꽃을 연상시키는 두 풍경을 구겨서 표현했고, <숨>은 옷걸이에 얌전히 걸린 옷이 아닌 입다 벗어던진 것처럼 쭈글쭈글한 자유자재의 형상이다. 옷은 사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수단이고, 사람의 냄새, 성향, 취향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누구의 옷이며, 어떤 사람이 입었는지, 어떤 취향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덧 껍질을 통해 우리는 옷이나 자루의 본체를 상상해보고 있다. 정운학은 이들 구겨진 작품들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세계가 아닌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그는 , <신문> 등의 텍스트를 소재로 하는 작품도 제작했다. 책과 신문이 지식, 규율, 정의 등 사회의 통념을 함의하고 있다고 여겨 이를 작품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들 텍스트를 구기며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는 이제 화가이기보다 조각가이다. 그가 만들어낸 입체작품은 일반적인 입체작품의 제작방식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입체작품은 흙으로 만들고 이를 석고로 뜨고 또 붓고 석고를 깨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그는 위에 기술한 소모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플라스틱에 열을 가하여 구부려 만들어 내는 직조방식을 택해서 자신이 원하는 구겨진 형태들을 제작했다. 회화의 입체성, 입체에서 직조방식 등의 표현방법에서 그의 반동적 성향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정운학은 보편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표현하고 이런 평범한 존재들을 변화시키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가치를 뒤틀어 작품을 표현한다. 예술가적인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며 제시한 반동과 역행의 이러한 작품들은 여러 가지 해석과 다양함을 가진 모호함으로 다가와 감상하는 이에게 다양한 인식과 사유를 하게 만든다. 한편, 이런 반동과 역행은 끊임없이 현실에 반응하며, 고정된 상황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의 특성이 있는 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며, 진보와 진화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정운학의 작품은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들뢰즈의 이론인 '차이와 반복'을 연상시킨다. 들뢰즈는 모든 세계는 동일성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존재를 규정하는 근본 개념이라고 했다. 들뢰즈는 "'차이'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내야 할 것이며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다른 모습으로 변이함으로써 생성되는 것이다"고 했다. 한편, 정운학의 작품들은 각각이 다른 개체를 복수로 제작하여 공간에 설치되었다. 미술에 있어서 '반복'은 미디어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미술과 대중을 연결하게 하는 대표적인 논쟁거리이기도 했다. 하나의 형상이 전달하는 내용보다 반복의 이미지들이 의미와 표현에서 작가의 작품 의도를 보다 극대화 시키면서 다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정운학의 작품 각각도 그가 의도하는 세계를 말하고 있지만 복수의 무심한 덩어리들이 모여진 전체는 서로 간의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그는 요즘 부쩍 빛에 관심이 많다. 불투명의 덩어리들을 LED등의 빛을 이용해 투명하거나 불투명하게 보이게 한 작품 <책 이야기>, 빛을 이용하여 춤추는 여인 같기도 하고 무형의 유기체들이 움직이다 멈춘 듯한 작품 <춤>을 제작했다. 그는 빛은 마치 흔들리는 정세처럼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듯한 표현과 물감으로 만들기 힘든 중첩되고 투과된 색채의 다양함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들은 어찌보면 고정관념에서 변화하고 적응하고 반작용하는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소재와 다양한 방법으로 현재의 생각들을 적절한 언어들로 표현하고 있다. 지속적인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그의 작품을 기대해 본다.